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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 2014-08-14 00:00
제1장 나가와 의례
동심원 모양의 대륙과 바다로 구성된 우주 모델에서, 바다와 육지들의 융기와 침하를 나타내는 물결들은 물의 상징인 ‘나가’와 잘 들어맞는 것 같다. 형태의 계보를 살펴보면 물이 나가와 동일시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 물의 상징은 다양하게 변화된 형태로 아시아 해안 전역에서 사람들의 일상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다. 그 형태는 순수한 수생적 형태로부터 태국의 ‘쌩(sang)’처럼 나가와 씽(singh. 사자)이 합쳐진 가공의 육지기반 생물, 그리고 본래 수생적 특징을 지닌 뱀이지만, 작은 다리와 날개를 가지고 수륙양서로서 날기도 하는 중국 및 일본의 용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나가의 분포
이 물의 상징이 중요하다는 증거는 고대 중국, 크메르와 여러 많은 아시아 문명에서 국가를 창시한 왕조들이 물 요소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전설적인 중국의 하(夏)왕조는 뒤엉킨 암, 수룡(龍)으로부터 탄생되었다. 동일한 수생 상징이 한국과 부탄에서도 사용된다. 수메리아, 바이킹 및 콜롬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등 아시아 해안 지역 밖의 고대문명들 또한 뱀을 물과 관련지었다. 바이킹의 기독교 이전의 항해문명을 알려주는 노르웨이의 목조교회(stave church)들은 전체적으로 용의 똬리(coil)가 조각되어 있고, 가장 강력한 건축적 상징은 지붕 용마루 끝의 용장식이다. 후대에 들어 용은 그 수생적 속성을 잃어버리고 옛 문명의 폐허위에 수준을 높여야겠다고 느낀 성 조지(St. George)와 같은 신성한 저명인사들에 의해 살해되어야하는 그저 혐오스런 동물로 전락했다.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는 뱀을 의미한다. 나가는 힌두고전에서 몇몇 주요한 상징적 장면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나가의 주요한 역할 중 하나는 비쉬누를 떠받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감는 것이다. 여기에서 전능한 신 비쉬누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세계의 소멸과 갱신 기간 동안 뱀의 몸 위에 기댄 체 우주바다 위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가의 또 다른 역할은 생명의 수액인 세상의 물을 모두 들이키고(아마도 빙하기 동안에) 쉬면서, 사지가 없는 뱀 구름의 형태로 메루산 위를 칭칭 휘감는 것이다. 이때 세상의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해 인드라가 그를 죽이러 나선다. 인드라는 그의 무기인 금강저를 꼴사나운 뱀의 똬리 한복판을 향해 내리친다. 그 괴물은 마치 시든 골풀더미처럼 산산이 부서진다. 마침내 물이 터지고 땅 위로 갈래갈래 흘러 세상의 중심부를 통해 또다시 순환한다. ‘바다 휘젓기’로 알려져 있는 나가 정복의 또 다른 예는 비쉬누의 대리인들이 생명수를 짜내기 위해 해양적인 연관성이 명백한 나가의 머리와 꼬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물과 관련된 의식들
태국에서는 왕에 대한 충성맹세 의식에서도 물이 사용되었는데 , 이는 흡수될 때 대상을 변형시킬 수 있는 물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브라만의 수장이 왕실사원에서 비쉬누의 화신인 나라이를 칭송하는 주문을 암송하며 성스러운 칼을 물에 적셔 물의 강력한 파괴력을 스며들게 한다. 모든 고위 관리들은 왕을 알현해야 했다. 이 의례는 브라만의 주문 속에 엄숙하게 거행되었고, 성스러운 칼이 이 맹세의 물에 적셔지면, 궁정 관리들이 소라와 나팔을 불었다. 이 다소 감동적인 의식이 끝나고, 그 성화된 물을 마신 자라면 누구라도 왕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의식은 즉위식이나 , 피난민이 이 나라에 남기로 결정한 때, 그리고 최근에는 고위공직자들이 새로 임명되거나 추밀원의 멤버가 된 경우와 같이 특정한 경우에도 거행되었다. 무기를 가진 군인들 또한 성수(聖水)를 매월 마시도록 요구 받았다. 충성맹세는 때로 부활되기도 했지만, 절대군주제가 폐지된 1932년도에 중단되었다.
물 요소와 관련된 의식들은 많은 형태를 띨 수 있지만 , 마치 메루산에 있는 뱀 구름을 통제하는 인드라처럼 중요한 의식들마다 태국의 국왕이 의식을 관리한다. 농사와 관련해서 말하면, 물이 많아져 홍수가 일어나는 경우 비가 그치게 하는 것은 왕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 목적을 위해 두 가지 의식들이 존재했었다. 첫 번째는 문자적으로는 배 몰기로 알려진 ‘프라라치피티 라이 르어(Phrarajphithi Lai Ruea)’라는 의식으로 매년 홍수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수확이 위협을 받았을 때 거행되었다. 이 의식에서 왕은 그의 가족 그리고 고위 신하들과 함께 모든 표장을 갖춘 채로 왕의 배에 올라 홍수와 맞섰다. 두 번째는 ‘물 추적하기’라는 의미의 ‘프라라치피티 라이 남(Phrajfhithi Lai Nam)’이라는 의식으로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식이며, 라마 1세(재위 1782-1809)와 라마 3세(1824-51)의 재위시기에 단 두 차례 거행되었다.
가뭄이 발생해도 왕의 행위가 요구되었다 . 비를 부르기 위해 왕은 ‘프라라치피티 피룬쌋(Phrarajphithi Phirunsat)’이라고 하는 의식의 거행을 명하였다. 옛 수도 쑤코타이에서 종종 거행되었던 이 의식은 전적으로 브라만적인 것이었다. 방콕에서 이 의식은 불교의례와 결합되었는데, 브라만적인 부분은 담이 쳐진 별도의 공간 안에서 거행되었다. 왜냐하면 그 의식은 데바(deva), 나가(naga), 물고기로 장식된 저수지 앞에 남녀의 성교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조각상을 두고 거행해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조각상을 제외하고 의식에 사용되었던 모든 주요 도구들이 오늘날 왕실사원 경내에 있는 특별한 불당에 보관되고 있다. 이 의례의 일부로서, 불교승려들과 브라만들이 약 1주일간 쉬지 않고 경문들을 암송하는 가운데, 왕은 계속 목욕을 하고 씻으며 여자와 접촉을 하지 않았다.
태국에는 비를 달래는 다른 방법들이 있었다 . 그들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오늘날까지 북동부지역 전역에서 농부들에 의해 왕성하게 실시되는 ‘방파이(bang-fai)’라는 의식이다. 이 의식은 한 신화적인 크메르 왕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영토에서 한때 심각한 가뭄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가뭄의 해결을 위해 그 왕은 ‘방파이’라는 대형로켓을 하늘로 발사하여 이쑤완(시바)를 즐겁게 함으로써 비가 내리게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의식적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방파이는 ‘위싸카부차(Visakha Bucha)’라는 불교의 성일(聖日)을 축하하는 하나의 큰 축제이다. 사실, 방파이 축제는 5월에 거행하며, 고대 12월 음력 주기의 여섯째 달의 보시(布施)의식을 대표한다. 방파이 축제 시기가 다가오면, 지역사찰들은 축제의 일부가 되어 비밀스럽게 로켓조립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활동장소가 된다. 각 사찰 혹은 마을은 로켓의 기술력을 두고 다른 곳들과 경쟁하는데, 예를 들면 공중에 미치는 거리, 장식, 대차(floats. 臺車. 행렬의 장식 수레 또는 화물운반용의 차-역주), 그리고 행진과 같은 분야에서 경쟁한다.
방파이는 화약을 채운 대나무로 만들며 그들의 핵심적인 장식적 상징은 나가이다. 때때로 마을 주민의 대부분이 정연한 행렬을 구성하여, 가수들과 무희들이 뒤따르는 화려한 대차에 실린 방파이와 함께 마을을 돈다. 종종 나무로 조각된 성기가 행진의 뒤에서 수레에 실려 간다. 이 성기와 나가 발사체(방파이-역주)는 추론컨대 생명수를 방출하는 원초적 뱀 구름을 암시하며, 따라서 지구상에 있는 생명의 풍요와 관련된다. 축제참가자들이 큰 사찰의 경내에 있는 발사 장소에 도착하면, 그들은 로켓을 가진 또 다른 그룹들과 만난다. 저녁의 남은 시간 동안 온갖 축제 행사들이 이어지고, 다음날 발사가 시작된다. 첫째로 점화되는 로켓은 하늘에 다다르는 높이에 따라 비가 잘 오는 계절이 될지의 여부를 알려주는 신탁용 방파이이다. 이 이후로는 환호 속에서 로켓의 경쟁이 뒤따른다.
태국의 전통적인 새해인 송끄란(Songkran)은 비를 달래는 것과 관련된 또 다른 의식이다. 이 의례는 승려들이 불상을 목욕시키기 위해 특별히 만든 축소형 누각 안에 불상을 봉안하여 밖으로 가지고 나옴으로써 시작된다. 대도시에서는 매년 대규모의 행진이 조직되어, 목욕의례가 거행되기 전 공들여 만든 대차(float. 臺車)에 사찰의 주불상을 운반하면서 대규모의 군중들이 뒤따른다. 전형적인 마을 공동체에서는 불상목욕을 위해 꽁팟(khong-phad)이라고 하는 독창적인 기구를 사용한다. 이것은 여섯 개의 작은 파이프가 비스듬히 붙어 있는 대나무로 만든 물그릇이다. 축제참가자들이 불상 위에 매달린 그릇에 물을 부으면, 물이 분출구를 빠져 나와 전체 기구를 빙글빙글 돌린다. 비록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불상 위로 나선형으로 떨어지는 분출수는 힌두교-불교의 우주형상론에서 중앙의 메루산 주위의 동심원적 지형과 훌륭하게 일치한다. 오후 늦게 불상을 목욕시킨 후 사람들은 봉헌을 하기 위한 꽃을 모으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행사는 항상 행진을 이끄는 떠들썩한 광대들과 악사들이 동반한다. 저녁에는 사찰의 광장에서 다양한 축제행사가 열려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태국에서는 송끄란 축제가 약 15일간 지속되며 사람들은 그 기간 중 철저하게 물로 젖는다. 노소를 불문하고 거리로 나와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나가의 왕이 물에서 노는 것을 모방한다. 이 의식에서는 서로를 가능한 한 많이 젖게 만드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해에 충분한 비가내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상징을 정확히 실행하기 위한 것인 양, 많은 이들이 강으로 나가 서로에게 물을 튀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