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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미 2015-05-09 00:00
워노보요 출토 금공품 중에서 장신구나 손잡이 달린 국자 등에 보이는 화려하고 복잡한 타출기법으로 표현된 꽃, 혹은 물결 모양의 유기적이며 입체적인 곡선의 장식 양식은 실제로 인도를 비롯한 남아시아에서 전래된 장식미술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직까지 스리랑카의 금속공예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된 바가 없지만,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기원전후 시기부터 인도의 금속공예 양식을 받아들였다. 스리랑카의 고대 불교 유적에서는 기원후 1∼3세기경에 제작된 금제 스투파형 사리기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는데, 이러한 스투파형 사리기들은 대부분 금판을 두드려서 만드는 단조기법과 타출기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초기 금제 스투파형 사리기의 예들로 볼 때, 스리랑카에서는 이미 기원전후의 시기부터 불교와 함께 단조와 타출 등의 발달된 금속공예 기법을 인도로부터 받아들였다고 추정된다.
5세기경부터는 인도와 스리랑카, 그리고 중국 남부 지역으로 이어지는 해로가 발달해 있었으며, 인도네시아에서도 5세기 이후 인도와 스리랑카의 문화를 다양하게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5세기에 인도를 다녀온 법현은 해로를 통하여 스리랑카를 거쳐 중국으로 귀국했다. 당시 스리랑카에는 유명한 불치정사가 있어서 많은 구법승들이 이곳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불교 및 힌두교의 전래와 함께 남아시아의 문화는 인도네시아 각지에 널리 전래되었는데,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영향 아래에서 8∼10세기 경의 중부 자바에서는 인도 및 스리랑카의 장식 미술 양식 및 금속공예 기술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된다.
스리랑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5세기경의 금제 귀걸이는 바로 워노보요에서 출토된 각종 금제 장신구 및 장식품의 선행 양식을 보여주는 예로서 매우 중요하다. 이 귀걸이는 출토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편년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데, 문양이나 양식은 9세기보다는 이른 시기의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 귀걸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일찍부터 유행하던 C자형 귀걸이의 변형 양식으로, 금을 주조하여 만들었다. 고리 아래쪽에는 워노보요 출토 금제 국자의 끝장식을 비롯하여 여러 장식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화려하고 복잡한 꽃, 혹은 물결 문양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장식 문양은 인도에서는 굽타시대 이후로 건축이나 조각의 장식 문양으로 등장한 양식으로, 인도 미술양식의 영향으로 생각된다. 한편, 귀걸이 아래 부분에는 중앙과 끝부분 등 여러 곳에 표면을 마연한 여러 가지 색의 보석을 감입하여 장식해 놓았는데, 보석의 형태는 일정한 형태로 가공한 것이 아니라 원석의 형태를 강조하며 표면을 둥그스름하게 마연한 것이다. 이러한 보석 가공 방식은 역시 인도네시아 자바의 워노보요 출토품에서 보이는 보석 가공 방식과 상통한다. 다만 워노보요 출토품에 사용된 보석들은 일정한 형태의 금판으로 난집을 짜 놓은 점과는 달리, 스리랑카의 귀걸이에서는 작은 발과 같은 형태로 보석을 물리는 방식으로 된 점이 차이가 있다. 이러한 귀걸이가 고대 스리랑카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볼 때, 9∼10세기경의 중부 자바의 장신구를 비롯한 금속공예 양식에는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아시아 장식미술 양식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워노보요 출토품을 비롯하여 고대 중부 자바 지역의 금속공예의 독자적인 제작기법으로 알려졌던 타출기법 공예품의 내부를 진흙으로 채우는 방식도 인도네시아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미 기원전후의 유라시아 대륙의 몽골 지역에서 타출기법으로 만든 금제나 은제 장식품 내부에 흙을 채우고, 철판이나 청동판과 같은 재질이 다른 금속판을 덧대어 마무리한 예가 있었다. 또한 스리랑카의 여러 유적에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금제 불상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어서 주목된다. 스리랑카의 금제 불상들은 얇은 금판으로 앞면, 뒷면을 비롯한 각 부분을 만든 후, 그 안에 흙을 채워 넣어서 완성한 것으로, 워노보요 출토품의 제작기법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러한 기법상의 공통성으로 볼 때, 얇은 금판으로 형상을 만든 후 그 속에 흙을 채워 넣는 방식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비슷한 시기에 같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스리랑카에서 출토되는 금제 불상들의 제작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10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아누다라푸라 지역의 불상이 비교적 이른 예로 생각된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된 금제 불상들은 아누다라푸라 뿐만아니라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에서도 14세기경까지 계속 제작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제작기법이 스리랑카에서도 상당히 널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불상의 제작 방식으로 볼 때, 얇은 금판으로 형태를 만들고 내부에 진흙을 채워서 금공품을 만드는 제작기법은 남인도와 스리랑카를 거쳐 동남아시아, 특히 자바 지역으로 전해진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