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48-53]
교역의 시대 동남아에는 교역선 운항에 관한 다양한 상업적 관례가 존재했다. 가장 일반적인 관례는 ‘상인이나 그의 대리인이 교역선을 타고 동행하여 자신의 물품을 직접 거래하는 형태로서 배의 화물공간 이용료는 물건의 가치와 여행거리에 비례하여 선주에게 지불한다. 배가 침몰했을 경우 물품에 대한 손해는 상인이 진다.’ 부기스규범(Bugis Code)에는 이용료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가 언급되어 있다. 또 다른 관례로서 말레이해상규범(Malay Maritime Code)에도 언급되어 있는 기탁(commenda, entrusting)의 방법이 이용되었다. 이 관례에 따르면 ‘상인이 선주에게 예를 들어 말라카에서 100 Cruzados에 해당하는 물품을 선주에게 넘기고 자신은 배의 운항에 동참하지 않는다. 선주는 자바(Java)로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 44일 이내에 140 Cruzados를 상인에게 지불한다. 마찬가지로 배가 침몰했을 경우 물품에 대한 손해는 상인이 지게 된다.’ 이러한 기탁과 비슷한 유형의 방식이 1세기 후에 반텐(Banten)에서 성행하는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집에 머물러 있는 부유한 상인이 항해를 하는 사람에게 투자의 목적으로 일정금액의 돈을 주어 계약을 맺는다. 만약 항해가 순조롭게 완료되면 계약에 따라 돈을 지불하고, 배가 침몰했을 경우 상인은 투자액을 상실하게 된다.’
Van Leur's(1934, 133) 는 교역의 시대 동남아에서 행해졌던 작은 규모의 교역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들은 작은 양의 일상용품들을 거래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물품을 나르고 있으며, 먼 시장에서 직접 팔거나, 그들의 여자들을 통해 물건을 팔고 있다. 그곳이 마치 그들의 제2의 집처럼 보여진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이동은 물품의 이동뿐만 아니라 사상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교역의 시대로 유도하는 통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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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제교역은 단일시장에서 이루어졌고 어느 도시도 외국인을 위한 3개 이상의 시장을 열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시장은 자유시장의 형태로 유지되었으며, 누구든지 당국에 일정한 세금을 지불하면 판매대를 열 수 있었다. 이러한 시장 운영형태는 아쩨(Aceh)와 수코타이에서도 나타났다.
한편 탕롱(Thang-long)과 아유타야(Ayutthaya)에서는 시장에 대한 왕실의 통제가 두드러지는데, 특별구역에서 물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하도록 특권을 부여하는 유형이 나타났다. 특히 탕롱에서는 특정 거리에서 특정한 물품만을 팔 수 있도록 하고, 이 거리들은 하나, 둘, 혹은 그 이상의 마을 주민들에게 점포를 열 특권을 부여했다. 베트남과 시암(Siamese)의 이러한 통제는 많은 수의 무역품과 공예품을 왕실의 소유로 하는 공물로 간주하여 독점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반해 도서지역인 말라카에서는 여성들이 거의 모든 거리에서 그 지역을 담당하는 상인귀족(Orangkaya)에게 세금을 지불하고 장사할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규모의 외국상인, 특히 중국인, 서아시아인 그리고 유럽인들에게는 도시 중심부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는 외국인 거주지에서 물품을 팔 수 있도록 했다. 중국배가 입항하는 계절에는 중국인 지역은 마치 축제를 여는 것 같으며,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가서 물품도 사고 음식과 술도 마시며 즐겼다. 이러한 시장을 벗어난 곳에서 물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일정액의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
시장에서의 물품가격은 협상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예화가 있는데, 네덜란드 상인이 말루쿠에 온 후 사람들이 정향생산에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하여 리엘(Laurens Reael, 1618, 89)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현지인과 가격협상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지인에 따르면 “상인들 사이에 흥정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례인데, 네덜란드 상인들은 정해진 가격으로 우리에게 가져온 의류를 받으라고 반강제적인 자세로 요구한다”는 것이다.
<출처>
Reid, Anthony. 1993.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ume Two Expansion and Crisis.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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