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HK)


[동남아에 유입된 서구문명] '교역의 시대’ 나타난 동남아 빈곤의 근원

김동엽 2010-10-06 00:00

16세기 초 동남아를 처음 방문한 유럽인의 눈에 동남아의 교역항(말라카)은 자신들이 떠나온 유럽의 작은 항구도시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화려한 국제무역항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이후 2세기 동안 전개된 소위 교역의 시대는 유럽에게는 지식과 자본의 축적을 통한 산업혁명의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세계경제체제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그러나 동남아는 오히려 농경사회로의 후퇴와 식민지 수탈의 대상으로 전락함으로써 세계경제체제의 주변부로 편입되는 저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시기였다. 이처럼 교역의 시대에 나타난 동남아 빈곤의 근원을 리드(Reid 1993, 267-325)10가지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교역의 시대에 나타난 동남아 빈곤의 내부적 근원들: 통치자들의 탐욕스러운 수탈로 인해 사회경제적 발전의 중추세력인 중산계층이 발달할 수 없었다; 원거리 항해가 가능한 선박을 제조했던 자바인(Pasisir, 1620-25)과 몬족(1599)의 쇠퇴로 해상활동의 기반이 붕괴되었다; 세계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립의 길을 추구했다. 즉 환금작물의 생산과 국제무역에의 참여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하자 이에 대한 생산과 무역활동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역수입이 줄어든 것에 대한 대안으로 농경에 힘씀으로써 스스로를 외부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 그리고 경제활동에 종족의 역할분화가 나타났으며, 중국인이 생산과 상업을 주로담당하게 되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교역의 시대에 나타난 동남아 빈곤의 외부적 근원들: 유럽인과의 결정적인 군사적 대결(1628년 마타람의 바타비아[네덜란드] 침공과 1629년 아체에 의한 말라카[포르투갈] 침공)에서 패배함으로써 이후 서구의 해상주도권을 회복할 만한 세력을 상실하였다; 1630년대 일본의 무역금지령, 1640년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의 건국(1644)이라는 혼란기, 그리고 유럽에서의 전쟁과 혼란 등 국제적 환경이 동남아 경제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17세기 무역량이 이전에 비해 절반 정도가량으로 감소했다; 소빙하기로 지칭할 수 있는 17세기의 악천후는 곡물수확을 급감시켜 기근과 인구감소로 있어졌다; 그리고 이슬람권의 상업이 쇠퇴하게 된 것도 중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교역의 시대 이후 동남아가 경험하게 되는 빈곤과 저발전은 급속히 밀려드는 외부의 영향을 적절히 수용하지 못하고, 변화하는 시대의 경제적 현실에 현명하게 적응하지 못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동남아에서의 경제적 진화단계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그 발전의 계기를 약탈한 서구세력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Reid, Anthony. 1993.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ume Two Expansion and Crisis.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pp. 267-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