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HK)


[동남아에 유입된 서구문명] 초기 도서부 ‘해안 국가’들의 정치적 신화와 교역

김동엽 2010-11-06 00:00

16세기 인도네시아에 도착한 포르투갈인들은 그 곳[수마트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 동남아 도서부 해안 국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하나는 모로(moros)들이고 다른 하나는 이교도(pagan)들이다. 이교도들은 이 땅의 원주민들이고, 전자는 상업을 목적으로 온 외국인들이다. 이들은 해안지대에 정주하여 급속히 번성하였으며, 150년이 체 되지 않아 스스로 통치자(lords)들을 만들어 왕이라고 불렀다. 이교도들은 해안은 떠나 육지 내륙으로 피하여 오늘날 살고 있다... 포르투갈이 인도에 도착할 당시 약 29개의 왕국이 그 거대한 섬[수마트라]에서 발견되었다. 이 섬은 매우 크며, 내륙의 정글에는 많은 왕자와 통치자들이 있으며,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한다.... 페디르(Pedir, 수마트라 북부)에는 서쪽과 동쪽으로부터 각종의 배들이 오고 있으며, 이곳은 마치 시장이나 상업 중심지처럼 모든 종류의 물품들이 있다.”
 
Hikayat Hang Tuah의 기록에 따르면, 말라카 왕조의 설립자는 하늘로부터 Bukit Seguntang에 내려온 즉시, 다양한 능력을 갖춘 왕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모든 상인들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상인들이 그곳에 교역하러 오고 갔다. 왕(raja)이 없는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모였다.” 마르코 폴로는 13세기 후반의 자바에 대해, “그 섬은 엄청난 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곳으로 수많은 배들과 상인들이 와서 많은 물건들을 팔고 삼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남긴다. 그 곳에는 엄청난 보화가 있어서 세상의 어떤 사람도 이를 믿거나 말할 사람이 없다”고 묘사했다. 이는 자연적으로 해상교역이 도서부 해안 국가들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며, 이는 곧 해외교역 활성화의 동기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중국의 기록에 나오는 502년 말레이 반도나 수마트라 남부의 칸토리(Kan-to-li)의 통치자의 꿈 이야기는 동남아 초기 해안 국가들의 국제적 환경에서 중국과의 교역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꿈 이야기에 따르면, “만약 그가 중국에 조공단을 보낼 수 있으며, 부유하고 행복하게 될 것이고, 상인들과 행인들이 100배나 증가할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이러한 교역과 관련된 정치적 신화의 존재는 교역이 초기단계의 해안 국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말해준다.
 
초기 도서부 해안 국가들은 대부분의 경제적 활동을 교역에 의존했다. 훌륭한 통치자의 특성과 의무는 충분한 수의 상인들을 자신의 항구로 모아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왕은 경쟁 가능성이 있는 주변의 항구들로 자신의 주권을 확장하려 노력했다. Milner에 따르면, 말레이 통치자들 중에는 “교역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여, 종국적으로 왕국이 곧 상업적 투기의 대상물(venture)처럼 생각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Thomaz는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자료에 근거하여 포르투갈 이전의 말라카를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말라카의 모든 것은 시장경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국가가 교역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국가 때문에 교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공적인 통치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들이 필요한 데, 우선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몇몇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충분한 카리스마[예를 들어, 용맹; 성스러운 징조; 성물(sakti)]를 소유함으로써 지역적 동맹이나 교류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유력한 항구를 중심으로 한 국가(polity)의 권위에 올라야 한다. 셋째, 이곳으로부터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교류를 확대하고, 유지하며 또한 규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적 방안들을 고안하고, 내륙지역의 경제적 자원을 탐색하며, 활발한 중계교역을 실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무기로서 재원을 동원하고, 조정하며, 그리고 재분배함으로써 자신의 세속적 권위를 확장하고 보다 많은 지지자를 끌어 모은다. 이를 통해 원하는 성공적인 왕국(ramai)의 지위를 획득한다.
 
이처럼 교역이 국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됨에 따라 이를 주관하는 상인들은 왕의 권위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7세기 초 아체를 방문했던 Beaulieu는 간략하지만 중요한 묘사를 했다. “대상인들(오랑가야)은 보통 왕으로부터 두 가지 경우에 대해 의심을 살 때 목숨을 잃는데, 이는 그들이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높을 때, 그리고 그들의 부에 대한 의혹이 생길 때이다.” 7세기의 스리위자야 시대 비문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선주(puhawang)는 왕의 보화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나타난다. 의심할 여지없이 상인들이 국가에 대한 후원을 멈추면, 통치자의 재물은 급속히 감소한다. 비슷한 예로서 797년의 참파 비문에 상인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무사, 지식인, 그리고 성직자들과 함께 상인이 국가의 부를 훔치는 경향이 있는 사람으로 나온다.
 
 
[참고문헌]
Manguin, Pierre-Yves. 1991. The Merchant and the King: Political Myths of Southeast Asian Coastal Polities. Indonesia 52: 41-54
Dion, Mark. 1970. Sumatra through Portuguese Eyes: Excerpts from Joao de Barros\' "Decadas da Asia", Indonesia 9: 128-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