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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엽 2011-07-29 00:00
17세기 유럽에서는 다른 지역과의 무역이 주로 국가에 의해 특권이 부여된 독점적 회사들에 의해 이루어짐으로써 불안정한 시장경쟁 상태를 만들었다. 이러한 국가의 간섭주의 정책은 군주나 정치인들에게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에 기초했다. 17세기의 이와 같은 국제무역의 모습은 중상주의적인 태도와 정책을 보여준다.
네덜란드에서 독점권을 가진 동인도회사(VOC)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다수의 회사들이 동남아 무역에 종사했다. 이 회사들은 Bewindhebbers라고 하는 이사들(directors)에 의해 주도 되었으며, 이들은 선박의 출항과 아시아 물품이 들어왔을 때 유럽시장에서의 판매에 관한 결정을 내렸다. 이들은 수익을 올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졌다. 그러나 1602년 독점권이 부여된 VOC의 설립 이후 회사 경영에 관한 주주들의 통제권은 국가의 권한으로 대체되었다. 국가가 부여한 독점권에 의해 이사들은 주주로서의 수익뿐만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수입으로 총 수익의 1%을 추가로 받게 되었다.
1602년 네덜란드 의회는 VOC의 설립을 승인하면서 면허장에 경영진에 대한 보상을 만듦으로써 선박의 운행 횟수를 늘리도록 유도하였고, 또한 경영진들을 투자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으로부터 보호했다. 이는 계약적 보상체계를 제도화함으로써 회사로 하여금 한 단계 진화된 무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전의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한 자유로운 무역관행은 VOC 설립 이후 동남아 시장에서 경쟁자를 몰아내기 위한 공격적인 무역행태로 바뀌었다. 주요 향료 생산지역과 독점적 계약을 맺음으로써 경쟁자를 따돌리려 했고, 조약, 토지점유, 항구건설 등을 강화함으로써 미래 식민지 건설의 초석을 다졌다.
네덜란드의 투자자들은 직접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 이외의 목적에 회사의 자원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염려했다. 이러한 염려에 대해 경영진은 투자자들에게 회사회계를 공개하지 않고, 배당금에 대한 공지를 미루며, 투자자들에게 초기 계약의 일부를 파기하고 자신들의 지분을 줄이길 원하면 투자한 원금과 배당금에 대한 권한을 판매할 것을 요구했다.
초기 동남아 무역에 있어서 VOC의 우위는 국가에 의한 지원 때문이 아니라 선박 운항수를 늘려 세입을 증가하려고 독점적 면허장에 부여한 경영진에 대한 보상조항 때문이었다.
한편 영국의 동인도회사(EIC)는 1600년 여왕으로부터 15년간 희망봉 너머의 무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 받았으며, 관세와 수출에 관한 특권도 동시에 받았다. 17세기 전반까지 EIC는 전적으로 선박운행에만 관심을 두었으며 생산에는 간여하지 않았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 시장의 시세 차이로 인한 수익창출에 몰두한 것이었다.
영국은 개인 투자자들이 여전히 회사운영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함으로써 VOC와 같은 경영진 보호를 제도화 하지 못했다. 회사와 국가는 독점적 면허에 대한 집행 이외에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역할도 없었다.
1620년대 초 동남아 후추무역의 80%는 VOC와 EIC 두 회사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다른 회사들이 뛰어들 여지가 없었다. VOC는 1619-21년 동안 60%에 가까운 물품을 전적으로 향료와 후추의 수출입에 의존했다. 1615-25년 기간 동안 VOC는 65개의 선박을 EIC는 35개의 선박을 운항했다.
동남아에서의 물품구입 가격은 두 회사 간 큰 차이가 없었다. 비록 항구마다 그리고 그 해의 작황에 따라 동남아 시장에서의 가격 차이는 있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입가격에는 큰 변동이 없었다. 대체로 동남아에서의 구입가격은 1,000파운드 무개 당 19파운드 정도였고, 유럽에서의 가격은 약 85파운드 정도였다. 1620년대 물품의 운반비용은 1,000파운드 당 15파운드 정도였다. 즉 VOC와 EIC 모두 후추 1,000파운드 당 비용이 약 35파운드 정도였다. 수입된 후추는 제한된 국내소비규모 때문에 약 80-90%가 북유럽과 지중해 국가들로 재수출되었다.
영토에 대한 지배는 장기적으로 네덜란드의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당시 모든 회사들에게 동남아 시장이 개방되었지만 각 회사들의 조직과 목적을 비교하면 무역에서 VOC의 우위가 드러난다. EIC는 상인들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사적회사였고 독점권을 가진 것 이외에 국가의 어떠한 지분이나 간여도 없었다.
VOC는 인도네시아 향료섬에 대한 영토적 지배권을 강화하고, 이 지역에서 경쟁자를 몰아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향료무역는 17세기 후반부에 그 중요성이 감소한다. 반면 네덜란드에 의해 동남아에서 물러난 영국은 인도로 눈을 돌렸고, 의도하지 않게 보다 수익성 높고 급속히 증가하는 면직물 무역에서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참고자료>
Irwin, Douglas A. 1991. “Mercantilism as Strategic Trade Policy: The Anglo-Dutch Rivalry for the East India Trade.” The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99(6): 1296-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