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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선 2024-05-30 00:13
동남아시아는 대륙부와 해양부로 나뉘며, 대륙부 동남아시아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의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같은 국가들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하지만 국경 지역이 히말라야산맥과 횡단산맥 등으로 거대한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중국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려면 베트남 북부의 좁은 평야 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수천 년간 베트남이 이 지역의 방파제 역할을 잘 해왔기 때문에 압도적인 힘을 가진 중국의 영향력을 막아 지역의 독립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국가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워 이해관계가 맞부딪혀 많은 갈등이 발생하고 전쟁이 잦은 편이다. 이 지역의 강호는 태국이지만 대부분의 국가와 태국은 관계가 좋지 않다.
미얀마는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태국과 가장 심한 갈등의 관계이다. 13세기 태국인들이 오기 전만 해도 이 땅은 미얀마와 캄보디아가 번갈아 지배하고 있었다. 14세가 태국의 아유타야가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성해지면서 이후 태국과 미얀마는 오랜 기간 서로 전쟁했다. 대체로 태국이 전쟁에서 유리했지만, 미얀마는 아유타야를 멸망시키기도 했고 태국이 방어를 위해 수도를 방콕으로 옮기게 만들기도 하였다. 지금은 이 두 국가의 현실은 너무 다르다. 태국은 이후 경제적으로도 성공 여전히 이 지역 최고의 강자이다. 1960년대만 해도 제법 잘 나가던 미얀마는 군부 독재가 장기화하고 경제 정책에 실패하여 이제 양국은 GDP가 2배나 차이 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100만 명이 넘는 미얀마 이주 노동자가 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불법 체류자는 얼마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태국은 역사적으로 강성했던 미얀마가 각인되어 여전히 미얀마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미얀마가 끊임없이 분열하도록 반정부 세력과 소수민족을 지원하고 있다. 태국에게 유리하다면 이들에 대한 피난처 제공이나 난민 수용도 적극적이다. 물론 자국에 불리하다면 수수방관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얀마는 예전처럼 복수에 나서기에는 국력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미얀마의 군부 역시 소수민족 사태를 자신들의 집권 연장에 적절히 이용하고 있어 태국에 대한 항의가 형식적인 측면도 있다.
캄보디아 역시 태국을 싫어한다. 사실 13세기 중국에서 이주한 태국인들 때문에 캄보디아는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은 캄보디아 크메르 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14세기 태국의 아유타야가 이를 무너뜨렸다. 또한 태국은 한때 자신들이 지배했던 앙코르 유적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막대한 수입을 올리자, 캄보디아의 보물인 앙코르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국제사법재판소가 이미 캄보디아 소유로 판결한 국경선의 작은 사원들을 두고서도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가 태국에서 막일로 먹고살면서 경제적으로 태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반면 정치적으로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영향권이다. 12세기에는 베트남의 참파 왕국에 크메르 제국이 정복당하는 참사를 겪었고, 200년 전에는 그 비옥한 메콩강 유역의 땅을 베트남에 빼앗겼다. 옛날 사이공이라고 불렸던 베트남의 호찌민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랜 독재자인 훈센 총리의 38년 집권도 베트남의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캄보디아인들을 태국과 베트남 중 하나만 고르라면 최악의 선택이지만 그나마 태국이 낫다고 말한다.
라오스는 동남아 유일의 내륙국으로, 태국과 애증의 관계이다. 두 나라는 민족적, 언어적으로 공통점이 많아 70% 이상 서로 말이 통한다. 그래서 1975년 라오스가 공산화되었을 때 인구의 10분의 1이 한꺼번에 태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다. 라오스의 젊은이들은 대개 라오스 TV 대신 태국의 선진 프로그램을 선호하여 문화적 종속화가 심화하고 있다. 태국은 라오스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고 있고 반면에 라오스는 태국에 문화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라오스는 캄보디아보다도 가난한 나라여서 태국인들은 라오스인들을 늘 불쌍한 동생 취급한다. 하지만 태국은 결코 착한 형은 아니다. 18세기엔 불심 깊은 라오스인들이 가장 애지중지하던 에메랄드 불상을 약탈해 자신들의 국보 1호로 삼았다. 라오스의 반환 요청엔 들은 척도 안 한다. 라오스인들은 태국에서 일하고, 태국의 물건을 보따리 장사하고, 태국에 농산물을 수출해 먹고 산다. 태국은 라오스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태국의 화폐인 바트가 라오스에서 통용될 정도로 태국의 영향력이 크다. 라오스는 태국인들의 우월감이 아니꼽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대신 라오스는 베트남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국에 함께 맞섰고, 지금은 같은 공산주의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라오스 정치는 베트남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다. 최근에 베트남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 라오스의 국가 인프라를 개발해 주고 있고, 라오스는 베트남을 벤치마킹해 경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으로부터의 생존을 위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충돌을 피했다. 그러나 17~18세기에는 태국의 동진 정책과 베트남의 남서진 정책이 충돌하면서 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베트남 전쟁 때는 태국이 미국을 지원하면서 두 나라 간의 관계는 악화하였다. 그러나 10여 년 전만 해도 태국에게 베트남은 안중에도 없는 나라였다. 베트남이 프랑스, 미국, 중국과 20세기 말이 되도록 독립전쟁을 치르느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양국의 경제력 격차가 컸기 때문이다. 베트남인들에게도 태국은 일자리가 있는 기회의 땅으로 많은 노동자가 태국에서 막노동했고, 태국인들은 이들을 멸시했다. 하지만 태국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주춤하는 사이 베트남은 지난 10년 동안 해마다 5~7%씩 성장해 왔다. 아직 1인당 GDP에선 차이 나지만 국가 GDP에선 80% 수준까지 따라잡았다. 이러한 베트남의 경제 성장은 태국에게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구나 5년 후에는 베트남이 추월할 것이라는 IMF의 경제 전망으로 태국은 동남아 대륙부의 1강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반면 그간 서러움을 당했던 베트남은 이제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으로 무엇이든 태국을 이기고자 노력하고 있다.
태국은 대륙부 동남아시아의 모든 이웃 국가가 부러워하고 시샘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이 더디고, 빈부 격차와 도시와 농촌 간의 경제 격차가 심화하고 있다. 또한 출산율의 빠른 감소로 인해 잠재 성장률도 하락하고 있으며, 더 살기 어려워진 주변국으로부터 불법 이주노동자들과 난민들이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는 국경의 밀림을 통해 계속해서 유입되고 있어 태국은 요즘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쳐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