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HK)


동남아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김인아 2014-04-01 00:00

동남아시아는 현재 11개의 국가로 형성된 지역이며,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는 대체로 인도, 중국, 서구와의 교역을 통하여 여러 종교와 문화가 유입되어 다양한 문화적 색채가 존재하는 모자이크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얼핏 보아 다양성이 잘 어울리는 지역이지만, 인도화, 중국화, 서구화로 설명되는 외부문명의 영향으로 내부세계의 문화적 의미는 상당한 통일성을 띠고 있어, ‘다양성의 통일성’이라는 표현이 동남아의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는 적절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본 강의는 먼저 동남아의 역사와 내부문화를 살펴보고, 이러한 문화적 특징을 중심으로 동남아 전 지역에 산재해있는 전통시대의 유적을 찾아가본다.


1. 동남아의 문화적 양상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의 동남아지역에서는 청동기문화를 비롯하여 매우 수준 높은 문화적 요소가 발견된다. 특히 베트남 북부지역의 청동북(bronze drum)을 비롯하여 태국 동북부 지역의 채색토기 등은 동남아 원주민의 문화적 우월성을 나타내는 예술작품들이다.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문화와 함께 정령숭배(animism)도 토착적인 고유한 동남아의 문화에 속한다. 


동남아에 있어서 획기적인 국가의 형성과 발전은 다름 아닌 교역에 의한 인도와의 접촉으로 발생된 인도화(Indianization, 프랑스 학자 세데스(G. Coedes)에 의하면, 일반적인 동남아의 인도화는 5가지 요소[왕권사상, 힌두·불교적 의례, 신화(purana), 법전, 산스끄리뜨어의 사용]가 보편적으로 유입된 것을 말한다)에 따른 결과로 빚어진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동남아인들의 생활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인도문화의 요소, 그 중에서도 통치마(룽기, 싸롱, 롱지), 음식 문화 등은 동남아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도문명의 영향은 힌두교, 불교 등 종교와 각지에 웅장하게 세워져 있는 종교건축물에서 더욱 부각되어 동남아를 결속시키는 정신적인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과의 접촉으로 인하여 베트남 북부지역을 비롯하여 대륙부 동남아에서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드러난다. 15세기 이후 유럽의 상업적 진출과 더불어 중국의 화교/화인의 진출로 근대 동남아에 중국의 영향력도 크게 미쳤다. 또한, 이슬람 상인의 진출로 도서부 동남아에 있어서 이슬람교의 전파는 새로운 문화 양상을 야기했다. 유럽 세력의 진출은 풍부한 동남아의 물산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식민지지배를 통하여 근대 동남아를 형성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동남아의 문화는 그야말로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혼합주의(syncretism)는 동남아의 문화적 양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키워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도화의 영향으로 다양한 문화적 색채 속에서도 통일적인 요소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오늘날 동남아 국가의 형성에는 고전기의 인도적 왕권사상에서 파생된 요소들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그러한 왕국에서 생성된 문화들이 현 동남아에서도 지속되고 있으며 동남아를 결속하는 정신문화의 원류가 되고 있다. 사실상 동남아라는 용어는 매우 이질적인 11개 국가의 무의미한 집합에 사용되는 것이 아닌, 앞서 언급된 통일적인 문화요소로 정의할 수 있는 문화적 경계로 규정할 수 있다. 


2. 동남아의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World Heritage, whc.unesco.org)


본 강좌에서는 동남아의 여러 종교문화적 유적지의 건축물 중에서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만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인도화의 영향이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는 곳은 자바섬이다. 특히 중부 자바의 족자까르따(Yogyakarta) 지역은 오늘날 이슬람교의 지배적인 세력 하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이 매우 뚜렷하다. 9세기경 사이렌드라(Sailendra) 왕조에 의해 건축된 것으로 여겨지는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대승불교적 색채를 띠며 불교 건축물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 이후 역시 9세기경에 건축된 힌두교 건축물인 쁘람바난(Prambanan) 사원군도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 캄보디아
9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에서 가장 강력한 인도화된 왕국이 오늘날 캄보디아 씨엠립 지역에 발흥하였다. 앙코르(Angkor) 제국은 일시적으로 대승불교가 도입되긴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힌두교 양식의 거대한 건축물이 앙코르 유적지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앙코르 지역에서 떨어진 북부 당렉산맥에 9-12세기에 걸쳐 건축된 쁘리아비히어 사원(Prasat Preah Vihear)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태국
석기시대의 유적지로 알려진 북부 태국의 반치앙(Ban Chiang) 지역에서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는 채색토기가 다량 출토되어 최근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 희한한 기하학적인 문양을 지닌 채색토기는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13세기 경 동남아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따이어족(Tai)이 건설했던 수코타이(Sukhothai, 1238-1438년) 왕국과 아윳타야(Ayutthaya, 1350-1767년) 왕국이 남긴 상좌불교적 건축물은 다른 상좌불교 문명권과 다른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 라오스
7세기경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루앙쁘라방(Luang Prabang)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도시이다. 동남아의 고대 유적지는 대부분이 왕조의 멸망과 함께 도시도 쇠잔하였지만, 루앙쁘라방은 그 예외의 도시이다. 한마디로 고대와 현대가 병존하는 문화유적지로 상좌불교의 색채가 강한 사원이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라오스의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쪽 지역에 위치한 왓푸(Wat Phu) 사원은 크메르 양식의 힌두교 사원으로 앙코르 제국의 유산이다.

 

● 베트남
동남아에서 중국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곳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하는 베트남의 북부 지역이다. 오늘날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Hanoi, 河內)는 기원전에 성립된 도시로 그 역사는 매우 깊다. 11세기에는 땅롱(Thang Long, 昇龍)이라 불렸고, 하노이란 명칭은 19세기에 붙여졌다. 도시 곳곳에 중국의 문화적 요소가 배어있지만, 베트남인 고유의 문화적 색채도 진하게 풍겨난다. 프랑스 진출 전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조의 왕도인 후에(Hue, 1802-1945년)와 15-19세기의 교역항으로 널리 알려졌던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하는 호이안(Hoi An)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7세기 베트남의 남진 이전에 중부 이남에 인도화된 왕국을 형성했던 참족(Cham)의 주요 유적지 중의 하나로 4-14세기에 걸쳐 존속되었던 미선(My Son)도 세계문화유산지로 선정되었다.


● 필리핀
1521년 마젤란 선단의 방문으로 외부세계에 알려지게 된 필리핀은 16세기 중반 이후 스페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그때부터 필리핀은 스페인의 기독교 전파와 함께 유럽 양식의 문화가 유입되었다. 16-18세기에 걸쳐 마닐라, 산따마리아, 빠오아이, 미악아오에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루손섬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비간도 16세기의 스페인 식민지 양식의 건축물로 인하여 세계문화유산에 포함되었다.


● 말레이시아
15세기 유럽과의 교역이 본격화되면서 믈라까해협 인근에 자리한 믈라까(Melaka, Malacca)는 동남아 교역의 중심지였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및 영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 도시의 역사는 여러 차례의 전화에 휘말렸다. 오늘날에도 포르투갈 상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중국 화교, 화인들도 다수 거주하고 있는 국제무역도시의 흔적을 갖고 있다. 1786년 영국에 의해 건설된 삐낭(Penang)섬의 조지타운(George Town)도 유럽 양식의 도시 색채로 인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미얀마(세계문화유산 철회)
미얀마의 중부 지역에 위치한 버강(Bagan)은 9-13세기에 걸쳐 버마족의 최초의 왕도였고, 그곳에 정치적 중심을 둔 버강 왕조는 최초로 현 미얀마 지역을 통합하였다. 상좌불교가 도입된 버강은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운 곳이며 미얀마의 불교문명세계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동남아의 그 어떤 지역보다 상좌불교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전성기 때에는 1만기가 넘는 불교사원이 건축되었으나 현재는 3000여기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