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료(HK)


15-16세기 동남아의 축제와 오락 2_ 경기와 시합

김인아 2013-06-04 00:00

경기와 시합 Contests and Tournaments



왕실 주최의 오락 중에서 동물 또는 사람의 경기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큰 축제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것은 코끼리, 호랑이, 물소 등의 경기였고, 투계(cockfight)는 지방에서도 빠지지 않는 중요한 오락 중의 하나였다. 동물들의 경기 중에서 흔히 등장하는 코끼리는 왕 또는 국가를 상징하는 존재였고, 이에 반해 그 상대역인 호랑이는 위험, 무질서, 적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이들의 경기는 항상 코끼리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도서부 동남아시아에서는 코끼리 대신에 물소가 호랑이와 격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동물들의 경기는 대중에게 오락을 제공한다는 의미 외에도 질서 있는 왕국의 위력이 야만적인 무질서에 승리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기마경기는 사람과 동물을 함께 결합시키는 경기로서 왕실에서도 중요하게 여겼다. 자바의 궁전에서 벌어졌던 세네난(Senenan)이라는 기마시합은 비유적인 전쟁의 의미를 띠었고 왕이 직접 관전하여 젊은 귀족들의 능력을 과시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대륙부에서는 기마시합의 변형으로서 폴로와 유사한 시합이 있었다. 이러한 기마시합 후에 동물 경기가 속개되었지만, 18, 19세기를 통하여 전쟁이 줄어들고 왕궁의 위계질서가 더욱 엄격해짐에 따라, 점차 동물 경기가 사람의 시합을 대신하여 주역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닭의 피가 신에 대한 희생물로 여기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투계는 사원이나 궁중의 행사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경기가 되었다. 왕실이 투계에 집착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비옥한 토양의 유지와 정화 및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닭의 피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둘째로, 즉위식에서 왕의 상징적 승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왕의 수탉을 패배시킨 상대의 소유주가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보복 당했다는 당시의 기록은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다.

도서부에서 이슬람교, 대륙부에서 상좌불교의 세력이 증대됨에 따라 각종 경기(투기)는 여러모로 그 영향을 받게 되었다. 도서부에서는 각종 경기를 국가의 행사로 형식화하여 사람들의 경기 대신 동물 경기로 바꾸도록 하였다. 대륙부에서는 불교가 살생을 금하고 있어서 투기에 대한 종교부문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왕실 후원 동물경기는 그다지 잔인한 광경은 연출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유타야의 나라이 왕은 승가의 압력으로 투계를 전면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동물의 투기를 대체하여 타이와 버마에서는 레슬링과 복싱을 장려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버마와 시암의 왕실에서 강력히 후원했던 또 다른 경기는 경조(boat race)였다. 도서부에서도 인기가 있었던 경조는 우기의 불어난 강물이 빠지기 직전인 10월의 연례 행사로서 이 역시 왕의 상징적 승리가 그 배경에 깔려 있었다. 1685년 나라이 왕의 경조를 지켜본 한 프랑스인의 기록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도 경조 참가자의 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배(balon)에는 더 많은 사공이 타고 있었고, 그것도 선발된 사람들이어서, 내기돈은 그에게 몰렸고 승리에 도취되어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조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내기를 하고 응원에 흥분할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있는 오락이었다.


< 참고자료>
Reid, Anthony. 1988. Southeast Asia in the Age of Commerce 1450-1680 Volume One Festivals and Amusements. New Haven and London: Yale University Press.